(가)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었다.
이날이야말로 동소문 안에서 인력거꾼을 하는 김 첨지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문안에 (거기도 문 밖은 아니지만) 들어간답시는 앞집 마나님을 전찻길까지 모셔다 드린 것을 비롯하여 행여나 손님이 있을까 하고 정류장에서 어정어정하며, 내리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거의 비는 듯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가, 마침내 교원인 듯한 양복쟁이를 동광학교(東光學校)까지 태워다 주기로 되었다.
첫 번에 삼십 전, 둘째 번에 오십 전 ― 아침 댓바람에 그리 흉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재수가 옴 붙어서 근 여흘 동안 돈 구경도 못 한 김 첨지는 십전짜리 백통화 서 푼, 또는 다섯 푼이 찰깍하고 손바닥에 떨어질 제 거의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다. 더구나, 이날 이때에 이 팔십 전이라는 돈이 그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몰랐다. 컬컬 목에 모주 한 잔도 적실 수 있거니와, 그 보담도 앓는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도 사다 줄 수 있음이다.
(나) 그리고 집을 나올 제, 아내의 부탁이 마음에 켕기었다. 앞집 마마한테서 부르러 왔을 제 병인은 그 뼈만 남은 얼굴에 유일의 생물 같은 유달리 크고 움푹한 눈에다 애걸하는 빛을 띠며,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제발 덕분에 집에 붙어 있어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라고 모깃소리같이 중얼거리며 숨을 걸그렁걸그렁하였다. 그때에 김 첨지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압다, 젠장맞을. 빌어먹을 소리를 다 하네. 맞붙들고 앉았으면 누가 먹여 살릴 줄 알아?”
하고 훌쩍 뛰어나오려니까, 환자는 붙잡을 듯이 팔을 내저으며
“나가지 말라도 그래. 그러면 일찍이 들어와요.”
하고 목멘 소리가 뒤를 따랐다.
정거장까지 가잔 말을 들은 순간에 경련적으로 떠는 손, 유달리 큼직한 눈, 울 듯한 아내의 얼굴이 김 첨지의 눈앞에 어른어른하였다.
(다) “여보게, 돈 떨어졌네. 왜 돈을 막 끼얹나?” 이런 말을 하며 치삼은 일변 돈을 줍는다. 김 첨지는 취한 중에도 돈의 거처를 살피려는 듯이 눈을 크게 떠서 땅을 내려다보다가 불시에 제 하는 짓이 너무 더럽다는 듯이 고개를 소스라치자 더욱 성을 내며,
“봐라, 봐! 이 더러운 놈들아! 내가 돈이 없나, 다리 뼉다구를 꺾어 놓을 놈들 같으니.”
하고 치삼이 주워 주는 돈을 받아,
㉢“이 원수엣돈! 이 육시를 할 돈!”
하면서 팔매질을 친다. 벽에 맞아 떨어진 돈은 다시 술 끓이는 양푼에 떨어지며 정당한 매를 맞는다는 듯이 쨍하고 울렸다.
(라) 발로 차도 그 보람이 없는 걸 보자, 남편은 아내의 머리맡으로 달겨들어, 그야말로 까치집 같은 환자의 머리를 꺼들어 흔들며,
“이년아, 말을 해, 말을! 입이 붙었어, 이 오라 질 년!” / “……”
“으응, 이것 봐, 아모 말이 없네.” / “……”
“이년아, 죽었단 말이냐, 왜 말이 없어?” / “……”
“으응, 또 대답이 없네. 정말 죽었나 버이.”